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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우르 바벨론 시대(우르 멸망 당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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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기가 통치한 48년간의 시날 패권은 여전히 우르에 있었고,
간네 또한 성소의 도시로써 그리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슐기가 죽고 세 아들이 왕좌에 오르면서 변화가 온 곳으로 보인다.
우선 엘람과의 화친이 깨졌을 것으로 보임은, 슐기의 아들 아마르신이 9년,
동생 슈신이 11년, 그 다음 입비신이 22년 통치한 후에
우르가 멸망한 것을 보면 엘람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전사함으로 왕위가 동생들에게 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은 세 왕의 이름 뒤에
"신"이라는 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슐기가 왕으로 있는 동안은
간네의 신앙이 나름대로 유지되고있었지만
슐기가 죽은 후에는 신앙적으로도 흔들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르가 시날의 패권자로써의 입지를 지키지 못하고 외세에 흔들리자,
간네 또한 신앙적으로 흔들렸을 것이고 외세에 의한 종교타락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흔들림 속에서 이어오던 중 마지막 왕 입비신이 왕위에 오를 즈음
간네에서는 벨렉(239세)과 나홀(147세)이 죽는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의 조상인
1셈(438세) 2아르박삿(338세) 3셀라(303세) 4에벨(273세)이 살아있는데
벨렉(239세)이 죽었다는 것이 문제가 있었음을 뜻하고,
벨렉의 아들인 6르우(209세)와 손자인 7스룩(176세)이 살아있는데
증손자인 나홀(147세)이 증조부가 죽고 다음 해에 죽었다는 것이 무언가
문제가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입비신이 왕위에 오르기 1년 전에 이미 간네는 다른 족속에게 점령당했고,
점령한 왕은 간네의 종교와 관련하여 개종을 요구할 때
이에 맞선 사람이 벨렉이었으며 이 때 벨렉은 순교한 것으로 보인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이 기록과 같이 에벨이 온 자손의 조상이 될 만큼 신앙의 계보를 유지한 사람이었다면
에벨의 아들인 벨렉은 그 유지를 이어받았을 것이고,
그가 그 당시 성소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점령군이 개종을 요구했다면 그들은 필시 북쪽의 바벨론이나,
구다의 왕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신에게 복종하라는, 즉 간네의 신 하나님이 자신의 신인 마르둑,
또는 네르갈에게 복종하라는 주문에 항거하다가 순교당한 것이 아닌가...
기록에 의하면, 간네(닙푸르) 사람들이 바벨론에 오려면 먼저 바벨론의 흙을 가져가다
그 흙을 밟고 난 후에 바벨론으로 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마르둑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바벨론에 올 수 없다는 것으로써
간네의 신인 엔릴에 대한 주변 국가와의 충돌이 계속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날의 최고의 신은 역시 간네의 엔릴이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하면서 군세에 의하여 높여지는 바벨론의 신인
마르둑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을 볼 때,
벨렉이 일찍 죽은 이유로는 종교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이듬해엔 나홀이 죽는데 이 해는 우르에 입비신이 왕위에 오른 해이다.
그러므로 이어서 생각해 보면 이듬해  함락된 간네를 구하기 위해
우르의 왕 슈신이 원정했다가 전사하고
그 때 나홀도 전사함으로 이른 나이에 죽었고, 그 해 입비신이 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간네가 북쪽 민족에게 넘어가고 우르의 입지가 좁아지는 가운데
마지막 왕 입비신은 22년 간 주변 도시국가간의 화친을 하면서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미 간네는 우르의 수중을 벗어난 상태였지만,
오래 전부터 데라와 아브람의 가족들은 우르에 와 살고있었으므로 큰 문제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시날의 국가간의 문제와는 달리 엘람과의 문제는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날 국가들이 동맹하여 대처하기도 하면서 이어왔던 22년의 왕위는 드디어 끝장나고 만다.
엘람의 총 공격이 시작되고, 결국 시날의 도시국가는 하나씩 점령되기 시작했고,
겨우 유지해 오던 우르마저 함락되므로 시날은 엘람의 수중에 들어가고 만다.

데라와 아브람과 나홀과 롯이 탈출한 후, 우르의 입비신은 엘람에게 항복하였고
엘람은 시날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그 이듬해 엘람은 아모리 족속의 땅인 마리를 치고 난 후
그 여세를 몰아서 남으로 향한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로부터 14년 후 사해 도성을 공격한 근거로 볼 때,
엘람은 마리를 친 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14년 후 엘람 연합군이 친 것과 같은 경로로 친 후 사해 도성까지 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엘람이 사해 주변을 휩쓸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아브람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 때 하나님의 인도로 하란에 안전히 있었고 엘람의 수색작전은 무위로 끝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엘람은 마리의 아모리 족속을 시날로 이주시키면서 혼혈정책을 쓴다.
이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도시와 민족인 시날 남부의 도시를 혼탁하게 하려는 사탄의 속셈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미 간네(닙푸르)의 신전을 떠나 아브람과 함께 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이런 시대의 시날은 이신과 라르사가 세력을 확보하게 되는데 바빌론 또한
이미 오래 전부터 독립을 하고있었지만,
세력확보에는 미흡했다가 이 틈에 세력을 확장하게 되어 그로부터 14년 후 엘람(그돌라오멜)이 사해 도성을 칠 때,
라르사(엘라살왕 아리옥)와 바벨론(바벨론왕 아므라벨)이 합세를 하게까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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