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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3 (16:56) from 211.195.69.176' of 211.195.69.176' Article Number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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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상징(2. 네 강과 思想, 그리고 욥의 네 친구)


에덴의 상징(2. 네 강과 思想, 그리고 욥의 네 친구)

창 2: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에덴에 있는 네 강은 세상에 있는 강을 그대로 說明하고있는 듯하여 사람들은 이 에덴에 있다는 강을 찾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고 겨우 정리한 것이 비손과 기혼은 나일강의 상류로 추정하고 힛데겔과 유브라데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데스 강일 것이라고 혹자는 말하고있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에덴의 강을 세상에 있는 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는 여러 곳에서 흘러오는 물이 모여서 강이 되지만 이렇게 한 곳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이런 경우는 가깝게는 백두산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백두산 천지의 물은 북으로는 송화강, 동으로는 두만강, 그리고 서쪽으로 압록강으로 나뉘어 흐르는 것이다.
또 태백산의 황지를 중심으로 시작된 물이 남으로는 낙동강으로, 그리고 서북 방향으로는 남한강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덴의 동산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나일강과 유프라데스, 티그리스 강은 서로 반대의 방향으로 나란히 흐르고있고 그 사이에는 남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북으로는 아람지역까지의 거리를 두고있는데 그 중간에 에덴 동산이 있었다가 땅의 모양이 변하면서 서로 멀어진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론인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라는 이름아래 이루실 구원의 役事와 歷史의 계획을 수립하셨고 그리고 그 계획의 진행을 창조 6일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보이셨다.
그리고 그런 役事와 歷史가 이루어질 구도를 다시 보이셨는데 그것이 이 네 강으로 기록된 기록이다.
이 구도가 주는 意味는 창조6일이 주는 役事보다는 간단히 보여주는 구도이지만 내용은 구원의 役事를 통해서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내용이기도하며 이루실 役事와 歷史에서 대별된 계획서이기도하다.
이런 점을 좀더 상세히 보기 위해서 에덴의 시작부분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은 에덴을 하나님이 계신 곳의 동편에 건설하셨고 그리고 그 동편을 향하여 役事를 진행하시는 것으로 하신다.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그리고 그 동편으로 아담과 하와를 보내시고 그리고 그 동편에 화염검을 두시어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신다.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것은 모든 방향이 동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동편은 세상을 意味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은 세상이라는 부분을 동편으로 명명하셨고 인간은 동편이라고 하는 세상으로 나왔으며 그리고 그 후 인간은 하나님에게 갈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막아놓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갈 수 있는 方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이 네 강이 주는 意味로써 이 네 강이 주는 意味가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암시하는 役事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구원에 이르는 役事의 강의 첫 번째는 "비손"이었다.
그러나 이 비손은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강이 아니었고 오히려 인간을 더욱 세상화하는 강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 강이 정금과 비델리엄 호마노와 같은 물질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方法論을 제시하는 상징의 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강이 주는 役事와 歷史는 제1시대인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歷史로 마무리되었고 이 歷史 속에서는 구원의 실체가 적극적으로 보여지지 못한 歷史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 歷史가 지난 다음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내시는 것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歷史를 시작하셨는데 그것이 아브라함에서 초림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歷史로 제2시대의 歷史인 구약시대의 歷史이며 그 상징이 두 번 째 강인 기혼인 것이다.
그러나 이 구약시대의 歷史는 마지막에 어두움의 役事인 암흑기를 맞이함으로 구원이라는 실체에 구체성을 주지 못하게 되는데 그 상징이 이스라엘의 멸망 후에 온 암흑기이며 이 두 번 째 강이 구스 온 땅에 흐른다는 상징인 것이다.
여기에서의 구스는 검다는 뜻과 관련하여 어두움의 歷史가 될 것을 예고한 것이고 그 歷史는 구원의 役事를 완성하지 못한 歷史로 남지만 언약이라는 부분만은 언제나 살아있는 歷史가 된 것이다.

그런 언약의 歷史가 이루어진 후에 다음 시대인 제3시대, 즉 신약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강이 힛데겔이며 이 강은 구원의 役事를 완성한다는  意味를 갖는 강이 된다.
그러나 본 문에서 보여주듯이 이 강이 앗수르 온 땅을 흐른다는 것과 같이 완전함을 이루는 것은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役事가 적용된다는 意味로서만이 이루어질 뿐이다.
즉 제2시대인 구약시대의 役事는 이스라엘이라는 부분에만 구원의 役事가 규정되었던 것이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신 후에야 선포되는데 그것이 앗수르가 주는 意味로서 이방이라는 意味인 것이다.
이렇게 이 강들은 세상을 향해서 흐르면서 구원의 歷史를 이루어 가는데
이런 歷史的인 意味외에 思想적인 意味의 문제도 함께하고 있는 것이 이 강들이 주는 意味인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비손을 說明할 때 說明했듯이 물질적인 사고로 구원에 이르려는 것과 기혼이 意味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사상과 같은 선택된 자라는 思想, 즉 예정론과 같은 思想도 있고 힛데겔이 意味하는 신약 시대에 생겨난 정통성과도 같은 意味의 思想도 포함된다.
이러한 歷史의 강이자 思想의 강을 구체적으로 說明한 기록이 욥기의 세 친구들이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상관관계를 볼 수 있다.

**(제1시대)(아담-아브라함)----------비손-(하윌라 온 땅/정금/베델리엄/호마노)
----나아마사람 소발(물질론 주장)
**(제2시대)(아브라함-초림예수)------기혼-(구스 온 땅)
----수아사람 빌닷(선민사상과 정통성 주장)
**(제3시대)(초림예수-육의 歷史 끝)--힛데겔-(앗수르 동편)
----데만사람 엘리바스(정통성과 선택론 주장)
**(재림준비시대)(육의 歷史 끝-재림)-유브라데-(  ?   )
-----부스사람 엘리후(개혁을 외침)
**아담과 하와(세상사람 상징)
-----우스사람 욥(오늘의 성도 상징)

즉 아담과 하와가 범죄로 인하여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을 상징하듯이 오늘의 성도를 상징하는 것이 욥인 것이다.
오늘의 성도들은 욥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있고 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려고 하고 있으나 막상 고난이 닥치면 그 고난이 어떤 연유에서 온 것이지를 모르고 자기가 고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람이 교회의 목사님이며 목사님들은 한결같이 원칙론 적인 말만 함으로써 성도들의 고난에 위로를 하기는커녕 아픔만 더 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항상 등장하는 것이 思想으로써 그것을 대별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고  그 세 가지의 思想을 상징한 것이 엘리바스의 주장과 빌닷의 주장, 그리고 소발의 주장인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과 같은 思想이 자리를 잡을 것을 예고한 것이 에덴에서 세상을 향해 흐르는 비손, 기혼, 힛데겔이라는 세 강이 주는 意味이며 결론은 이런 思想으로는 하나님에게 이를 수 없다는 것이 욥기의 초점이자 이 세 강이 주는 意味이며 歷史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方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마지막의 강인 유브라데로써 이는 표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육의 役事가 끝난 후에 이어지는 재림 준비의 歷史이고 이 役事와 歷史를 이루시기 위해서 보내지는 엘리후라는 이름 모를 사명자의 등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브라데는 흐르는 방향이 다르다.
세 강이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유브라데는 아무 기록이 없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자가 깨달아서 알아야할 부분이라는 뜻이다.
즉, 비손은 하윌라 온 땅, 기혼은 구스 온 땅, 힛데겔은 앗수르 온 땅으로 기록된 것은 이 모두가 세상을 향해서 흐르면서 이루는 歷史르는 것을 意味하는 동시에 유브라데는 그 기록이 없음은 곧, 그 반대인 하나님을 향해서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욥의 이야기에 나오는 엘리후도 그의 주장을 보면 어디까지나 그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보여주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이 문제를 상의하라고 하며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즉 물질적인 思想이나 선민 思想이나 정통성으로는 불가능하고 모든 시각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이른바 하나님 본위로 생각하라는 뜻인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성경을 보는 시각을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보아온 것이며 그건 시각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각과 思想의 강은 세상을 향해 흐르는 강이며 思想이므로 그 반대편에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엘리후와 같은 사명자를 보내셔서 성도를 상징하는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도록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시려는 것이다.
그런 결과 욥기의 결론과 같이 욥은 폭풍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고난은 끝났으며 이전보다 더 크게 되었는데 그것은 물질적인 풍요와 생활의 회복이 아니고 믿음의 회복으로써 그가 "모년"이 되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歷史가 있을 것을 보여주는 강인 유브라데, 그 강은 성도가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강으로 곧, 세상에서 보면 역류하는 강인 것이다.
그러나 이 역류하는 강인 유브라데라는 思想과 엘리후라는 개혁만이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셨듯이 모든 성도는 다 구원의 표를 가지고있는 것이다.
그가 비손과 소발이 상징하듯 물질론 적인 성도라 하더러도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또 기혼과 빌닷이 상징하듯이 선민사상과 같은 정통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버리시지는 않는다.
그런가 하면 더욱 확실한 것은 힛데겔과 엘리바스와 같은 성도라면 더욱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상태로는 재림의 役事를 볼 수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役事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내 이름이 불려지기를 바란다면, 또 오늘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오늘 외치는 소리인 엘리후의 소리와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하나님을 향해 흐르는 역류의 강에 몸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네 강이 주는 意味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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